Page 32 - 고경 - 2015년 4월호 Vol.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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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이었습니다. 스님은 3 · 1독립운동 참여로 감옥에서 3년
옥고를 치렀습니다. 용성 스님은 옥중에서 기독교의 찬송가
와 한글 성경을 접하고 불교도 속히 경전의 한글화와 찬불
가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출옥 후 역경불사와 불교의식의 한
글화, 그리고 교단청정운동에 매진합니다.
1926년에 조선 승려들 사이에 대처와 식육이 확산되자
이를 바로잡고자 총독에게 두 차례 건백서를 내었습니다. 또
한, 불교의 현대화와 더불어 선의 대중화에도 진력하였는데,
대각사에 처음으로 부인선원을 개설하고, 망월사에서 ‘활구
참선만일결사회’를 조직하여 참선결사운동을 추진하였습니
다. 아울러 선종의 선농일치 (禪農一致) 정신을 실천하고자 만
주의 용정에 대각교당, 하동에 화과원 (華果院)을 건립하여
참선하며 농장을 운영하기도 하였습니다.
용성 스님도 문하에 동산 스님, 동헌 스님, 고암 스님 등
훌륭한 제자들을 두었으며, 특히 동산 스님의 제자인 성철
스님은 용성 스님의 시자를 했습니다. 용성 스님의 문도 스
님들이 운영하는 사찰은 범어사, 해인사, 화엄사, 쌍계사, 신
흥사, 대각회 (재) 등이 있습니다.
박희승(중효) 한국문화연수원 교수. 조계종 총무원에서 기획차장, 문화차장, 연구소
사무국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조계사 선림원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참선 프로그램을 진행하
고 있다.
30 고경 201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