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5년 6월호 Vol.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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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주한 곳이 오히려 좋은 수행처
수행자가 좌선을 하는 것은 깨달음을 얻고 중생을 제도하
기 위한 방편이다. 따라서 좌선에만 집착하거나 조용한 장소
만을 찾아다닌다면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좋은
약도 지나치면 병이 되는 법이다. 조용한 장소가 수행에 도
움이 되지만 장소만을 고집하고,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만이
수행이라고 생각한다면 수행 자체가 또 다른 집착이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좌선하지 말라거나, 고요한 수행처를
일부러 피하라는 것은 아니다. 앉든지 서든지 마음을 다스리
고 공부를 잘하는 것이 관건이다. 따라서 앉고 서는 데 집착
하면 공부가 아니라 병이라는 것이 성철 스님의 지적이다. 옛
조사 스님들도 “고요한 처소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시끄러운
곳에서 공부하는 것이 효과가 백 천만 배는 더하다.”고 했다.
고요한 곳에서야 굳이 수행하지 않아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감각을 자극하고, 눈에 거슬리는 상
황과 만나고, 감정적 충돌이 발생하는 곳에서는 매 순간순
간 마음을 다스리지 않으면 삶이 지탱될 수 없다. 진짜 수행
이 필요한 곳은 역경계로 넘쳐나는 삶의 현장이다. 이런 이
유로 만해 스님은 ‘진짜 크게 숨는 것은 저잣거리에 숨는 것’
이라고 했고, ‘세속으로 들어가는 것 [入世]이 곧 세속을 벗어
나는 것 [出世]’이라고 했다. 마음이 경계로부터 초연할 수 있
다면 비록 몸이 객진번뇌로 질퍽거리는 저잣거리에 있어도
그 마음은 자유와 평화를 누린다는 것이다.
성철 스님은 평생 고요한 수행처에서 일생을 보냈지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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