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고경 - 2015년 6월호 Vol.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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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록의 뒷골목
흔들렸다고 해서
잘못한 것은 아니다
_ 장웅연
“진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조주(趙州)는 “뜰 앞의 잣나
무”라 했고, 운문(雲門)은 “똥닦개”라 했다. 달리 말하면 ‘뜰
앞의 잣나무’일 수도 있고 ‘똥닦개’일 수도 있다는 것이며,
‘뜰 앞의 잣나무’여도 좋고 ‘똥닦개’여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진리라고 해봐야 결국엔 망상일 뿐인데, 무어라 이
름을 붙이든 그게 대수는 아닐 테니까.
이렇듯 화두(話頭)는 잡다하고 번쇄한 생각을 ‘뭣도 아님’
으로 수렴하는 말이다. 편 가르고 줄 세우기 좋아하는 알음
알이의 길목을 막아서며 본연의 실상(實相)을 드러낸다. 물
론 실상이라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단, 모든 것이 있는
척하지 않고 그냥 있는 상태다. 언어 이전의 세계에는 시비
도 귀천도 없다.
화두는 타파해야 한다지만, 음미만 하더라도 얼추 마음의
허기를 달랠 수 있다. 자신을 규정짓는 신분과 직함은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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