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15년 6월호 Vol.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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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표히 제 갈 길을 가면 그만이다.
                   바람은 숲을 흔든다. 바람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평온을
                 되찾는다. 흔들렸다고 해서 잘못한 것은 아니다. 다, 괜찮다.

                 생각이 잠깐 있었을 뿐, 본래는 아무 것도 없다. 바람에 대
                 한 노여움도 바람맞는 일의 아쉬움도 바람난 마음의 그리움
                 도, 끝내는 바람보다 가볍다.



                   【제17칙】
                   법안의 털끝(法眼毫釐, 법안호리)


                   법    안 :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

                           나 멀어진다고 했다. 그대는 이를 어떻게 생각하
                           는가?
                   수산주 :  웬걸요.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 사이
                          보다 더 크게 벌어집니다.

                   법    안 : 그래서 또 어떻게 되겠는가?
                   수산주 :  저는 여기까지인데 화상께서는 어쩌시렵니까?
                   법    안 :  아무렴. 털끝만치라도 어긋나면 하늘과 땅 사이
                           보다도 훨씬 더 크게 벌어진다.

                   이에 수산주는 문득 절을 하였다.


                   ‘언어는 생각의 그릇’이라 해서 얼핏 생각이 먼저인 듯하
                 지만, 사실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다. 예컨대 “나는 저 녀석

                 이 싫어!”라는 문장이 머릿속에서 조립돼야만, 비로소 저 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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