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고경 - 2015년 6월호 Vol.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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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이 확실히 싫어지는 것이다. 아울러 사과가 ‘사과’임을 인
                 지해야 거기서부터 먹고 싶어지며, ‘살인’이란 글자는 가시가
                 달린 것도 아닌데 무섭다. 언어는 생각을 부추기고 생각은

                 언어로 강해지는 셈이다. 언어와 생각의 선후관계는 아리송
                 하지만, 담합관계인 것만은 분명하다.
                   개구즉착(開口卽錯). ‘말하는 순간 틀린 말이 된다’는 뜻이
                 다. 언어의 숙명은 분할이어서, ‘이것’을 말하는 동시에 ‘이

                 것 아닌 것’이 갈라져 나오고 만다. ‘부처’라는 개념 때문에
                 ‘중생’이란 자조(自嘲) 혹은 하대(下待)가 성립한다는 전제에
                 서, 조사선은 ‘본래부처’라는 절대적 평등을 이야기한다. 특
                 히 이것에 해박하다는 건, 자동적으로 이것 아닌 것에 무지

                 하다는 반증이다. 그리고 모르니까 외면하고 차별한다. 입을
                 열면 먼지가 들어오게 마련이다. 모든 생각은 필연적으로 자
                 기만의 생각이다.
                   한걸음 나아가 선사들은 동념즉괴(動念卽乖)도 가르쳤다.

                 ‘생각이 일어나는 순간 어그러진다’는 의미다. ‘바름’이라는
                 소신은 ‘삿됨’보다 더 악랄한 삿됨으로 변질되기 일쑤다. “불
                 교는 불교가 아니며 단지 이름이 불교일 뿐”이라는 『금강경』
                 의 논법은, 응당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는 지식의 한계를 일

                 깨우기 위한 조치다. 진짜 평화는 한 사람이라도 섣불리 생
                 각하지 않고 함부로 말하지 않을 때 시작된다.



                 장웅연(張熊硯)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2002년부터 불교계에
                 서 일하고 있다. ‘장영섭’이란 본명으로 『길 위의 절』,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불행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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