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6년 1월호 Vol.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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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개의 메모리를 유식학에 근거하여 사람에게 적용
                한다면 ROM은 자아정체성의 뿌리가 되는 제8아뢰야식에,
                RAM은 금생에서만 작동하는 제6식에 각각 비유할 수 있다.

                제6식은 카메라, 마이크, 자판 등과 같은 입출력 장치의 정보
                를 취합하고 저장하는 RAM과 유사하다. 6식은 눈이나 귀와
                같은 감각기관의 정보에 근거해 작동하지만 삶이 끝나는 순
                간 RAM에 저장된 정보처럼 모두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아뢰야식은 ROM에 저장된 정보처럼 자아정체성과
                생사윤회에 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으며, 죽어도 사라지지
                않고 다음 생까지 계속 작동한다. 마치 보이지는 않지만 모든
                프로그램이 ROM에 저장된 BIOS에 의해 좌우되는 것처럼 제

                8식도 보이지는 않지만 자아의 근원이 되고, 생사를 관통하
                여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며, 모든 번뇌의 뿌리가 된다는 것이
                유식학의 설명이다.
                  따라서 유식학에서는 연기와 중도를 설명한 뒤에 그 이치

                를 바로 알려면 아뢰야식의 근본무명을 해결해야 한다고 했
                다. 화면에 나타난 RAM의 정보가 컴퓨터를 끄는 즉시 사라
                지듯이 6식 차원의 정보 역시 살아 있는 동안에는 유효하지
                만 죽는 순간 모두 사라진다. 이런 관계로 본다면 의식차원에

                서 움직이는 인식의 변화가 생사해탈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것은 자명하다. 설사 제6식에 해당하는 의식 차원에서 무엇
                을 알았다고 해도 그것은 전원을 끄면 사라지는 RAM의 정보
                와 같아서 생사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선에서는

                제6식단계의 작용인 ‘잘 이해 함’과 같은 인식으로서는 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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