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고경 - 2016년 8월호 Vol. 40
P. 32

어가 대들었습니다.
                  “스님, 돈오점수가 맞지 않습니까?” 단도직입하니, 성철 스
                님은 갑자기 훽 하고 돌아누워 버리셨어요. 나는 비장한 각

                오로 대들었는데, 돌아누워 아무 대꾸도 않으니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냥 물러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돈오돈수를 알고 보니, 노장의 그때 그 행동이 그대로 훌륭한
                법문이었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 어느 때 태백산 각화사 동암에서 무심코
                『육조단경』 「정혜품」을 보다가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
                步)”, 뜻을 깨닫고는 비로소 돈오돈수를 제대로 알게 되었어
                요. 그동안 돈오점수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다른 안목

                이 열렸습니다. 특히,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이 잘 정리되었
                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런데, 돈오돈수를 바로 알아 공부 방향을 전환하니 그동
                안 맺은 인간관계에서 많은 문제가 생겼어요. 돈오점수 기준

                으로 볼 때 깨쳤다고 인정해주고 아껴주던 노장들께서 제가
                돈오돈수 이야길 하고 아직 깨친 게 아니다 하니 완전히 외면
                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정리로 봤을 때는 제가 참 좋아하고 스
                승으로 따르고 형제처럼 지낸 분들인데 그렇게 되었습니다.

                  수행자들조차 이러한데 학자들이나 재가자들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래서 늘 이렇게 말합니다. “조사선, 간화선은
                본래성불의 돈오돈수 입장이나 깨달음으로 가는 길은 돈오점
                수도 있다. 좀 느리고 빠른 차이는 있지만, 잘못된 길이 아니

                고 다 같은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니 서로 다투거나 차별하면


                30                                                고경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