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7 - 고경 - 2016년 8월호 Vol.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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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피조물과 창조주가 존재한다. 중도를 말하는 불교 역시
                 예외는 아니다. 윤회와 해탈이 있고, 번뇌와 보리가 있고, 중
                 생과 부처가 있고, 차안(此岸)과 피안(彼岸)이 엄연히 존재한

                 다.
                   종교 또한 이런 구별 속에서 악을 넘어 선을 지향하며, 지
                 옥이 아닌 천국을 갈망하고, 차안의 고통이 아닌 피안의 적
                 멸을 꿈꾸며, 중생이 아닌 부처가 되고자 한다. 수행자들이

                 치열하게 수행하는 것도 번뇌를 제멸하고 지혜를 체득하기
                 위함이며, 불자들이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도 중생의 삶에서
                 부처의 삶으로 가기 위함이다. 어떤 점에서 종교에서 제시하
                 는 이원적 구조는 현실을 넘어 이상을 향해 실천하게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불교의 진짜 매력은 바로 그와 같은 이원적 차별을
                 넘어서는 데 있다. 불교의 핵심사상은 중도(中道)이고, 불이법
                 문(不二法門)이기 때문이다. 현상적이고 표피적 관점에서 보면

                 나와 너는 분리되어 있고, 다른 존재같이 보인다. 하지만 근
                 원적 관점에서 보면 둘이 아니라는 것이 불이이고 중도이다.
                 불이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차별과 대립은 사라진다. 중생과
                 부처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고, 욕망이 꿈틀대는 차안이 곧

                 피안이고, 번뇌가 곧 보리가 된다. 불이의 눈으로 바라보면
                 중생과 부처라는 이분법적 경계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엄학을 집대성한 현수법장도 “중생 마음 안의 부

                 처님 (衆生心內佛)이 부처님 마음 안에 있는 중생(佛心中衆生)
                 을 위해 법을 설한다.”고 했다. 중생이 깨달으면 그 마음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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