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 - 고경 - 2016년 8월호 Vol.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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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로요?”
“깊은 풀숲에 숨으면 찾을 수 없을 거다.”
“스님께서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청림이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독기가 한결같군.”
깊은 풀숲이란 청림 (靑林)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공부하다가 길을 잃으면 나에게 찾아와 물으라’는 배려의 마
음씨로 읽힌다. 가소롭게 핑계를 대거나 어설픈 결론을 내리
지 말고. “스님께서도 조심하셔야 한다.”며 제자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한 생각 머무르고 집착한 곳이 뱀들의 무덤이다.
마음에 웅덩이가 생기지 않도록 매사 긴장해야 한다.
하나같이 영리하고 약삭빠르다. 정직하고 겸손한 삶이 도
리어 개성이 되어버린 것 같은 세태다. 지름길로 가겠다는 건
힘을 덜 들이겠다는 것이고, 힘을 덜 들이겠다는 건 남의 힘
을 빼앗아 이용하겠다는 것이다. 손쉽게 얻은 결과는 허물어
지기 쉽다. 그리고 손을 잘라서라도 손에 쥔 것을 놓치고 싶
지 않은 게 중생의 욕심이다.
모두가 자기 몸통만큼만 살았다면, 세상이 이토록 아수라
장이 되지는 않았으리란 생각. 쇠똥구리는 하루 종일을 기고
기어서 고작 똥을 먹는다. 아니다. 비로소 똥님을 잡수신다.
장웅연 ● 집필노동자.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장영섭’이란 본명으로
『길 위의 절』, 『눈부시지만, 가짜』, 『공부하지 마라』, 『떠나면 그만인데』, 『그냥, 살라』, 『불행
하라 오로지 달마처럼』 등의 책을 냈다. 최근작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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