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0 - 고경 - 2016년 12월호 Vol.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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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은 번뇌의 먼지가 아니다. 따라서 경계도 번뇌를 일으키는
                대상이 아니며, 대상을 인식하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활동
                도 번뇌에 물듦이 아니다. 보고 듣고 맛보는 인식작용이 고

                (苦)가 아니기에 원돈지관의 입장에서 보면 끊어야할 고란 애
                초에 없다(無苦可捨).
                  이렇게 보면 무명의 번뇌가 그대로 보리가 됨으로 애써 끊
                을 집착도 없어진다(無集可斷). 절대의 눈으로 보면 삼라만상

                이 진리 아님이 없고, 깨달음 아님이 없고, 지혜 아님이 없기
                때문이다. 느끼고 감수하는 모든 경계들이 번뇌가 아니라면
                애써 끊으려고 할 필요도 없다.
                  상대지관의 눈으로 보면 중생의 삶이란 변견에 물들어 있

                고, 삿됨에 의해 고통 받고 있다. 그래서 번뇌에 물든 세상을
                떠나야 하고, 중생의 삶은 버려야 할 것이 된다. 그러나 절대
                지관의 입장에서 보면 변견이 그대로 중도이고, 삿됨이 그대
                로 올바름이 된다(邊邪皆中正). 따라서 변견을 버리고 중도정

                견을 체득한다든가, 사견을 버리고 정견을 닦아야 하는 그런
                수행도 있을 수 없다(無道可修). 중생의 삶은 나고 죽는 생사
                의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절대지관의 관점에서 보면 나
                고 죽는 고통 그대로가 고요한 열반(生死卽涅槃)이다. 따라서

                무엇을 얻거나 증득할 만한 고요나 열반조차 따로 있지 않다
                (無滅可證)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중도실상의 경계에서 보면 고통도 없고, 고통을 유발
                하는 집착도 없다(無苦無集). 집착과 고통은 끝없는 악순환의

                길이므로 유전연기라고 한다. 하지만 중도실상에서 보면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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