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4 - 고경 - 2016년 12월호 Vol.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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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학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유식학은 식(識)을 중심으로 일체
만법을 설명하기 때문에,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처럼 식과
분리된 외계실재를 말하는 불교학파와는 견해의 차이를 크
게 보인다. 한편 인도에서는 불교를 포함한 종교철학자들이
토론할 때 논리학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인
도에서 논리학을 발전시키는 데 큰 공헌을 했던 학파로 정리
학파(正理學派), 곧 니야야학파를 들 수 있지만, 그것의 발전
에 지대한 공로를 했던 인물로는 불교의 진나(陳那) 보살을
빼놓을 수 없다. 6세기경에 활동했던 진나 보살의 관점에 따
라 기존의 인도논리학이 새롭게 재편되었으므로, 그를 인도
신인명 (新因明)의 시작이라고 본다.
● 연수 선사가 유식학을 많이 소개하는 이유
연수 선사의 『종경록』 100권에는 선·화엄·천태뿐 아니라
유식학의 내용 역시 상당 부분 등장한다. 선사는 대략 『종경
록』의 5분의 2 분량을 『성유식론』의 논의를 중심으로 기술
했기 때문에, 그 분량만 보더라도 그가 유식학을 중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선사로서는 이례적으로 교학을 많이 인용
하므로, 이에 대한 반론이 『종경록』 내에서 여러 차례 등장한
다. 그렇다면 연수 선사는 왜 유식학을 이렇게나 많이 인용하
는 것일까?
우선 연수 선사가 일관되게 강조했던 ‘문자의 방편으로 학
인들의 심성을 깨우쳐 주려는 태도’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선사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이 보다 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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