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16년 12월호 Vol.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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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지닌다. 반면 선종(禪宗)은 만법의 근원에 주목한다는 점
에서 법성종(法性宗)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런데 근원
적인 것만 중시하다 보면, 그 근원에서 펼쳐지는 세세한 현상
들에 대해 자칫 소홀히 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가령 우리
는 ‘마음’이라는 말을 늘 사용하지만, 그 마음이 지니는 기능
에 대해 누군가 상세히 물어본다면, 그에 대해 자세히 답해주
기가 쉽지 않음을 금방 느끼게 될 것이다.
연수 선사의 시대에도 이런 상황들이 발생했던 것 같다. 선
사는 아마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같은 포괄적인 내용뿐
아니라 마음의 세세한 내용과 기능을 설명해주는 유식학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사람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병의 원인을
보다 확실히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 후대의 영향
중국의 명·청 시기 불교계에는 유식학과 인명학이 유행
처럼 번져갔다. 그런데 문제는 당의 현장 법사와 규기 법사
에 의해 이루어졌던 유식학의 전통이 중국 불교 내에서 전승
이 끊어진 지가 꽤 오래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오랜 전란으
로 인해 유식학의 중요한 전적들이 대량으로 소실된 점과 밀
접한 관련을 지닌다. 상세한 해설을 담은 책들이 사라짐으로
인해 정밀한 개념 분석을 필요로 하는 유식학과 인명학 역시
퇴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기에 중국의 고승들이 참조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
한 책이 바로 연수 선사의 『종경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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