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6년 12월호 Vol.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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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한 문으로 깊이 들어가서 보살의 계위를 차례로 증득하여
                 성불하는 과정이다.
                   「정맥소」를 쓴 진감 선사는 명나라 말기 인물로, 원래는 유

                 학을 공부했다. 그는 출가 전에 이 경을 만났고 출가한 동기
                 도 이 경에 있었다. 그는 불교를 만난 다음부터는 유가 경전
                 을 보려하면 채찍질을 해도 권태로운 마음이 일어났지만 불
                 경을 대하면 정신이 맑아졌다고 한다. 불교공부를 하는 동안

                 집안이 몰락하고 초상도 여러 번 치르는 등 곡절을 겪다가
                 이 경을 만났는데,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가운데 경에 절
                 을 하니 부처님을 직접 대한 듯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고 한
                 다. 이렇게 그는 출가 전부터 이 경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으나

                 당시 널리 유통되던 주석들을 검토해 보니 미진한 점이 많았
                 다. 그 점을 통탄하여 ‘기필코 출가하고 오래 살아서 이 경을
                 해석하여 세상에 남기리라’ 발원하고 출가하였다.
                   출가 후 대승교학 전반을 탄탄히 공부하고, 기존의 주석들

                 을 비판적으로 계승하여 주석을 펴냈는데, 이것이 「정맥소」
                 다. 명대 스님들이 여러 분야에 다작을 남긴 것과는 달리, 그
                 는 출가한 후 평생을 이 경에 쏟아 20년 걸려 이 소 하나만을
                 남겼다. 다른 스님들이 자신이 속한 학파의 틀을 가지고 경을

                 해석했다면 그는 오로지 경의 맥락에만 의지하여 해석했고,
                 따라서 이름을 ‘정맥’이라 하였다. 『능엄경』이 대승의 요지를
                 담고 있기 때문에 「정맥소」도 대승의 요지를 철저하게 분석
                 하고 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종문의 선을 이해할 수 있는

                 철학적 관점을 세운 것이 이 소가 가진 하나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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