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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앉은 채 큰 가르침을 널리 편다면, 그 융성함은 가히 요임금
순임금과 서로 비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굳이 신체를 움
직이고 말을 달려 몸을 피로하게 하고, 입과 혀로 음모를 꾸
며 기진맥진하고자 하며, 바람을 맞고 먼지를 마시며 들판에
머무르고자 하십니까? 게다가 동남쪽은 땅의 형세가 낮아 전
염병의 기운이 가득해 우순이 가서 돌아올 수 없었고, 대우
역시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말을 타고 어가를 몰아
힘들게 할 가치가 있습니까? 백성들을 피폐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시경』에 ‘중원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해 사방의 모
든 사람을 어루만진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처럼 만약 인
의예지의 가르침으로 먼 지방의 사람들을 품는다면, 작은 병
사도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모든 곳의 사람들을 귀순해오게
할 수 있습니다.’”
16)
그러나 도안의 충심어린 충고 역시 부견의 귀에 들어가지 못했다. 부견
은 끝내 전쟁을 감행했다. 전쟁의 결과는 참혹했다. 383년 음력 8월 안휘
성 비수淝水 부근에서 벌어진 동진과의 전투에서 부견의 90만 대군은 마치
썩은 짚단이 무너지듯 넘어졌다. 패배의 여파로 비수대전이 끝난 지 2년만
16) “命翼扶安升輦, 顧謂安曰: ‘朕將與公南遊吳、越, 整六師而巡狩, 謁虞陵於疑嶺, 瞻禹穴於會稽, 泛長
江, 臨滄海, 不亦樂乎!’ 安曰: ‘陛下應天御世, 居中土而制四維, 逍遙順時, 以適聖躬, 動則鳴鑾淸道,
止則神棲無爲, 端拱而化, 與堯、舜比隆, 何爲勞身於馳騎, 口倦於經略, 櫛風沐雨, 蒙塵野次乎? 且東南
區區, 地下氣癘, 虞舜遊而不返, 大禹適而弗歸, 何足以勞身駕, 下困蒼生. 《詩》云: ‘惠此中國, 以綏四
方.’ 苟文德足以懷遠, 可不煩寸兵而坐賓百越.’” [唐]方玄齡 等 撰, 簡體字本二十四史13 『진서晉書』卷
114「載記第14」, 北京:中華書局, 1999, p.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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