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6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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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라는 구절 역시 부견의 덕화德化를 보여 준다. 영웅은 부견과 그의 군
           대를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견의 성공과 화려함 뒤에는 한족 재상 왕맹(王猛. 325∼375)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분열의 시대에 부견을 도와 전진을 강국으로 만든 그

           는 중국역사상 가장 훌륭한 재상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어떤 학자는
           그를  관중管仲·공손앙公孫鞅·제갈량諸葛亮·왕안석王安石·장거정張居
           正과 같은 반열의 재상으로 평가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운 시

           절을 보낸 왕맹은 천성이 부지런하고 총명했다. 힘든 여건 속에서도 병법

           서를 탐독하며 부지런히 실력을 키웠다. 전진 정부에 발탁된 뒤 부견을 도
           와 저족氐族의 족벌과 종실의 권한을 누르고, 중앙집권을 강화했으며, 현
           명하고 뛰어난 인재들을 널리 발탁했다. 농업과 양잠도 발전시켜 백성  들

           을 편안케 했다. 부견이 화북지방을 통일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런 정

           책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종 직전의 그가 부견에게 남긴 말은 동진 정
                                     13)
           벌에 나서지 말라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일찍 죽지만 않았어도 부견은
           남진정책을 실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의지와 계획대로만 진행되지 않는 것이 바로 역사이기

           도 하다. 한족 이외 다른 민족도 성군聖君이 될 수 있음을 당당히 입증한 부
           견이었지만 역사의 이런 법칙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화북지방을 통일할 때
           가는 곳 마다 큰 승리를 거뒀던 그 기억이, 바로 그 승리감이 부견의 마음

           을 흔들어 놓았다. 이와 관련해 기억할 가치가 있는 평론이 있다. 송의 사

           마광(司馬光.  1019∼1086)이  1084년  편찬한  『자치통감資治通鑑』권제106 진





           13) 中國歷史大辭典編纂委員會, 『中國歷史大辭典-魏晉南北朝史』, 上海:上海辭書出版社, 2000,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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