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7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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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법문』 해설 63
현상과 본질의 소통
서재영 | 불광연구원 책임연구원
이슬 같은 유위법
현상과 본질은 철학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다. 현상이 겉으로 드
러난 것으로서 표피적이고 가변적인 것이라면 본질은 현상 이면에 있는 근
원적이고 불변적 성질을 말한다. 예를 들어 들판에 피어 있는 꽃은 겉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꽃은 인식의 대상으로 눈앞에 존재하지만 화무십일홍이
라는 말처럼 가변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하다.
『금강경』에서는 그와 같은 현상에 대해 ‘인연因緣으로 성립된 유위법有爲
法’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유위법의 특성은 ‘이슬 같고[如露]’, ‘번개
처럼 사라지는 것[如電]’이라고 했다. 반면 본질은 그런 현상 이면에 존재하
는 존재의 근원적 성질이나 이법을 말한다. 불교에서 볼 때 한 송이 꽃이
라는 현상은 연기緣起라는 이법에 의해 존재한다.연기법이라는 이법은 우
주에 항상 존재하는 것[常住法界]이므로 꽃이라는 현상의 본질이다.
그런데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idea처럼 현상을 초월해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상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헤겔은 후자의 입장을 취하는데, 그는
“본질은 현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본질은 현상을 초월해 있지 않
으며, 근원적으로 보면 현상과 본질은 소통한다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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