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8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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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계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 화엄에서 말하는 이理와 사事라는 개
념이다. 이理는 우주적 원리이자 연기법과 같은 존재의 본질에 해당한다.
반면 사事는 인식의 대상으로 눈앞에 펼쳐져 있는 삼라만상과 같은 현상이
다. 화엄학에서는 이와 사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상호 소통한다고 보았는
데, 그것을 설명하는 것이 ‘이사원융의理事俱融義’라고 할 수 있다.
존재의 공성과 이법의 실재성[事虛理實]
일반적으로 ‘이理’는 이법理法, 본체本體를 의미하는 반면 ‘사事’는 이법에
의해 드러난 무수한 사상事相이나 본체에 의해 드러난 작용作用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사원융이란 현상과 본질, 본체와 작용이 서로 분리된 것
이 아니라 상호 소통하는 불이不二의 관계라고 설명한다.
눈앞에 펼쳐져 있는 무수한 존재들은 이理에 대응되는 현상[事]들이다.
한 송이 꽃, 계절의 변화, 태양과 구름, 산과 대지, 무수한 생명체들도 모
두 사事로 표현되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무수한 현상만 있고 그것을 관장
하는 이理가 없다면 세상은 무질서와 혼돈에 빠지고 말 것이다. 겨울에 꽃
이 피고, 물이 거꾸로 흐르고, 악인이 복을 받는 등의 일이 벌어질 것이다.
따라서 무수한 현상[事]들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보편적 질서가 있어
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연기법이다.
그런데 이법을 어떻게 이해하는 가에 따라 사유의 양태가 갈라진다. 이
법을 초월적인 것으로 이해하면 그 이법은 모든 존재를 넘어서 있는 이데
아나 신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연기법이라는 이치는 개별적 사물을 초월
해 있는 질서나 절대자가 아니다. 연기의 원리를 결정하는 것은 초월적 이
법이 아니라 무수한 존재들 그 자체들이기 때문이다. 현상으로 드러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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