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6 - 고경 - 2018년 7월호 Vol.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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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로부터 법정스님의 홀로 사는 삶과 까다로운 성격, 문필가적 면모를
           둘러싼 이런 저런 평가를 듣기도 한다. 입만 벙긋 하면 어긋난다는 ‘개구즉
           착開口卽錯’이나 혹은 ‘불립문자’不立文字니 ‘염화미소’拈花微笑라는 말에 올인

           하여, 분서갱유焚書坑儒하듯 싸악 문자들을 태워버린다면 이 세상이 한결

           좋아질까, 불법佛法에 대한 대중들의 다양한 눈높이, 진리에 대한 난청難
           聽, 낮은 해상도解像度의 시력은 또 어쩌랴.
             선방에서 참선만 하는 분들은 펜대 굴리는 문필 작업을 아주 우습게 알

           수도 있으련만. 개인적으론 문자사리文字舍利를 진실을 드러내는 고귀한

           매개로 본다. 대기설법對機說法이 필요한 경우, 당연히 언어에 기댈 수밖
           에 없다. 의언진여依言眞如 - 진여도 세속에 다가가서 읽히려면 ‘말에 기
           대어’, ‘말로써’ 나지막이 천천히, 나긋나긋 조곤조곤 알기 쉽게 설명되어

           야 마땅하리라. 꼭 그래야 한다. 대중들을 위해서라면 ‘말에 기대서’라도

           함께 저 언덕[彼岸]으로 가야하리. 그래야 대중들도, 스님들을 따라서, 불
           법의 정수리[頂]에 오르며 미끄러져 내리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서
           지 않겠는가.




             이 풍진의 끝자락에서, ‘대지大地’를 새로 읽다


             이 풍진 세상의 무명 중생들은 죽어 땅에 묻히고서야 비로소 탐·진·

           치의 ‘삼독심’을 그친다. ‘독’毒은 잘 다스리면 ‘약’藥이 된다. 그래서 ‘독’ 자

           에 만물을 길러준다는 ‘양·육’養·育의 의미도 있다. 죄나 업보가 구원의
           근거(계기, 단서)가 되듯이 말이다. 어쨌든 중생들의 ‘마음’에는 그런 ‘독’들
           이 덕지덕지 묻어있다. “에이, 독한 놈들∼”이라 하듯이, 숟가락 들 힘, 문

           지방 넘을 힘만 있어도 그저 탐·진·치의 고갱이가 스윽∼ 끈질기게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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