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5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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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다. 마치 바람이 자신의 움직임을 알아줄 ‘종’[=풍경風磬]이 없이는 자
신의 존재 위치나 상태를 알리지 못하듯이. 아니, 바꿔 말하면, 종 또한
‘바람’ 없이는 자신의 아름다운 목소리나 자태를 드러내지 못하듯이. 무명
풍도 이 육신 없이는 일어날 곳이 없다. 아니 이 육신도 무명풍 없이는 휘
날릴 수 없다. 대지 위의 산천초목이라는 형체를 가진 ‘공간적’인 표현 없
이는 위대한 무시무종의 시간도 그것을 기려주고 챙겨줄 형식이 없다.
산에는 꽃이 피었다 진다, 봄가을 없이. 시간은 그렇게 꽃이 ‘피고 짐’으
로 자신의 영원한 모습을 주름잡아 분절分節하여서 보여준다. 나무의 시간
도 붉고 푸른 이파리로 보여준다. 그것이 나무의 민낯=맨얼굴=본래면목
이다. 이 풍진 세상의 풍광은 그저 증감增減도 없이, 공허 속을 출렁이는,
풍류風流일 뿐. 즐거움도 기쁨도 없이, 아름다움도 추함도 없이, 그저 출렁
출렁 흔들릴 뿐이다. 이 풍진 세상 그 끝자락을 부여잡은 무덤 곁으로, 내
가 가고 싶은 이유는 ‘아름다운 마무리’ 때문이다. 법정 스님의 말대로 ‘처
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 ‘초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나는 누구이며, 순간순간 어디로 가는가를 짚어보며, ‘홀로 서는 것’.
그러나가 끝내, ‘다 내려놓아야’ 한다.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에
서, “죽음도 미리 배워 두어야 한다.”고 하며, 죽음의 의의를 밝힌다: “살
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그 생을 마감한다. 이것은 그 누구도 어길 수
없는 생명의 질서이며 삶의 신비이다. 만약 삶에 죽음이 없다면 삶은 그 의
미를 잃게 될 것이다. 죽음이 삶을 받쳐주기 때문에 그 삶이 빛날 수 있다./
6)
얼마 전 한 친지로부터 들은 말이다.”
6) 법정 스님, 「죽음도 미리 배워두어야 한다」, 『아름다운 마무리』, 서울:문학의 숲, 2008,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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