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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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높은 봉우리(산정), 어중간의 언덕이나 평지, 낮은 골짜기를 함께
가졌다. 깊은 산 속에 산다는 것은 두 발의 한쪽은 ‘우뚝 솟아오름-삶’에다
다른 한쪽은 ‘깊이 잠김-죽음’에다 몸을 둔 것이다. 형체-질서와 비형체-
카오스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이다. 죽으면 서 있던 직립의 몸통들은
모두 산 속의 땅에 묻힌다. 그래서 산 속의 생활은 생과 사, 그 양면을 동
시에 살아가는 묘한 방식이다. 법정 스님은 이 대목을 짚어둔다: “이제는
다시 산의 살림살이에 안주할 때가 되었다. 옛 선사의 법문에, 때로는 높
이높이 우뚝 서고/때로는 깊이깊이 바다 밑에 잠기라[有時高高峰頂立, 有時深
深海底行], 이런 가르침이 있는데, 안거 기간은 깊이깊이 잠기는 그런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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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잠김에서 속이 여물어야 다시 우뚝 솟아오를 수 있는 저력이 생긴다.”
로고스는 ‘높이높이’, 카오스는 ‘깊이깊이’
로고스는 ‘높이높이’를, 카오스는 ‘깊이깊이’를 지향한다. 살아서는 산의
정상, 정수리처럼 우뚝 솟아 높아지고자 한다. 고고함의 표상이다. 그랬던
것들이 차츰 낮아져서 평지, 그것은 다시 그 이하의 어두운 곳으로 숨어든
다. 암굴이라는 고요하고 깊은 은폐와 말소의 경지를 향한다. 그윽하고도
또 그윽하다는 『노자』 (왕필론) 제1장의 ‘현지우현玄之又玄’처럼, 카오스는 보
다 더, 점점 더 깊은 곳(=심층)을 향해가서 결국 ‘세계 그 자체’가 된다. 종
교의 명상과 수행은 보통 이쪽으로 향한다.
그런데, 심층 세계를 담당하는 대지는 카오스 쪽에서 로고스를 분해・
4) 법정 스님, 「지금이 바로 그때」, 『아름다운 마무리』, 서울:문학의 숲, 2008, pp.114∼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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