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4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P. 114
해체하기도 하지만 카오스를 다시 로고스 쪽으로 이끌어 재생・생성하는
힘을 갖고 있다. 법정 스님은 말한다. “대지의 맨살에 닿는 것은 좋은 일이
다.” “대지는 단순한 흙이 아니다. 흙, 식물, 그리고 동물이라는 순환을 통
해 흘러가는(움직이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땅과 접촉
하고 흙에 뿌리박은 삶이 필요하다. 인간의 삶은 자양분을 공급하는 흙으
로부터 차단되면 살 수 없는 나무와 같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흙을 가
5)
꾸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대지의 맨살=살갗은 늘 우리를 부른다. 흙은
죄를 지은 자이든, 탕자들이든 귀환하는 것들은 누구나 부드럽고 자비로
운 손가락으로 어루만져서, 죄다 받아준다. 흙의 세례로 인간은 세계의
에너지에 합일한다. 그렇다. 대지의 흙 없이는 생명은 누임-쉼-평온이
라는 완결성을 얻지 못한다. 마무리는 흙이 한다. 안아주고 쓰다듬어주는
힘, 그것이 결국 우리를 깊은 곳으로 안내하고 감춘다. 땅의 감춤이라는
권능 즉 지장地藏의 힘이다. 계절에 춘하추동이 있듯, 땅에도 생生→장長
→수收→장藏의 내공이 있다. 이 가운데도 주인공은 ‘장’이다. 생로병사生
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異滅에서 ‘사-공-멸’이 주인공이듯
말이다.
죽음도 미리 배워 두어야
흙은 시간을 견디는 모든 공간적인 것들의 기본형식이다. 아니 시간의
경과를 느리고 거칠게 보여주는, 이른바 시간의 발자국이거나 상처 혹은
5) 법정 스님, 『간다, 봐라』, 리경 엮음, 서울:김영사, 2018, p.66.
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