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8 - 고경 - 2018년 8월호 Vol.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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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할 것은 도덕과 부도덕의 경계조차 희미한, 진정성 없는 경어 같은, 거
짓말 아닌 거짓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바른 말이 바로 불망어不妄語
‘현재 유럽 사상의 최고봉’이라 불리는 지그문트 바우만은 “내용이 무감
각할수록 인사말은 더 정중해진다.”고 말했습니다.(『도덕적 불감증』, 책 읽는
수요일, 2015) 조금 다른 맥락에서 한 말이긴 합니다만, 오늘 우리들이 일삼
는 진정성 없는 경어 표현에 대한 일침으로도 읽힙니다. 앞서 편의점이나
식당의 언어 사용에서 제가 문제로 여긴 것은 어법의 어긋남이 아니라 지
극히 기계적인 예의 바름이었습니다. 그들 아니 우리 모두의 역할이 당장
AI로 대체된다 해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어 보입니다. 이미 일부 편의점에
서는 AI를 도입했다 합니다. 머잖아 서로 사기를 치더라도 진정 인간과 인
간이 부딪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습니다. 범죄 행위도 아니고 부도
덕하지도 않은 거짓말도 많습니다. 처음 만난 처녀 총각이 서로에게 호감
을 느낄 때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거짓말이 필수입니다. 평소 냄새도 맡
지 않던 순댓국도 상대의 반응에 따라서는 좋아한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는 당연히 고슴도치의 마음을 닮아
야 합니다. 인륜의 차원에서 용인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범죄자를 숨겨
주거나 도망가도록 도와주는 것도 범죄이지만 친족이나 함께 사는 가족이
그러한 행위를 했을 때는 처벌하지 않습니다. 장려되는 거짓말도 있습니
다. 항일 독립투사를 쫒는 일본 경찰, 유태인을 색출하는 나치 앞에서는
사냥꾼에게 쫒기는 사슴을 숨겨준 나무꾼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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