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5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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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은 아일다에게 삼역죄를 적용해 교단의 입문을 결사적으로 막았다.
그러자 아일다는 점점 노해져 승방에 불을 지름으로써 무고한 많은 사람
의 목숨을 앗았다. 이후 왕사성에 계신 부처님을 찾아가 출가를 간청했다.
대중들이 아일다의 범죄를 들어 극구 반대했으나 부처님은 그를 용서하고
진리의 설법을 펼쳐 제자로서 품에 안았다.
부처님은 또 음식에 독을 타 당신과 제자들을 살해하려던 장자 ‘시리굴’
도 용서했다. 시리굴을 국법으로 처단하겠다는 아사세왕을 설득해 시리굴
을 정법으로 인도하는 무한한 자비심을 펼쳐 보이신 부처님에게 ‘용서’는
한정된 그릇이 없었다. 용서의 전제 조건이나 단서가 없었다는 얘기다. 무
조건적으로 베풀어진 용서의 장면에서 부처님의 무한 사랑이 느껴지는 것
이다. 이것이 내가 불교를 좋아하는 이유였다고 생각한다.
『벽암록』 제52칙에 등장하는 조주의 ‘돌다리’는 깨달음으로 이끄는 조주
의 선적 지도력을 상징하고 있기도 하지만 신분과 전력을 따지지 않고 선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는 조주의 넓은 포용력으로도 해석된다. 조주는 제
방의 선지식을 편력하면서 “일곱 살짜리 아이라고 하더라도 나보다 나은
자에게는 가르침을 청할 것이며, 백세의 늙은이도 나보다 못하면 가르칠
것이다”고 했다. 이러한 그의 원대한 구도의 편력 앞에서는 왕과 신하, 젊
음과 늙음, 지연과 혈연 따위는 작용하지 않았다. 조주선사에게 분별심은
없었다. 따라서 용서하고 이해할 대상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조
주의 ‘돌다리’는 그러므로 누구나 건널 수 있는 길이다. 죄가 있다고 해서
제지되거나 차별받지 않는다. 이것이 진정한 선문이며 차별 없는 평등의
세계다.
그러기 위해선 용서가 전제돼야 한다. 온갖 지천과 강물이 자연스럽게
바다로 흘러들어오듯이 사해중생이 부처님의 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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