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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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 앞 후박나무(왼쪽). 월든 호숫가에 있는 소로우의 통나무 집.
물건들은 보통 문자로 지시되어 있다. 틈틈 물 마시는 곳, 쉬는 곳, 특히
먹고 마신 뒤 몸의 일부를 내려놓고 푸는 ‘해우소’ 같은 것들을 눈여겨 봐
두어야 한다.
안계시되 계시는 ‘흰 고무신’의 무게
드디어 터널 같이 컴컴하게 우거진 조리대나무 숲 속을 지난다. 불일암
이 나타난다. 그 안에 펼쳐진 사각형의 작은 텃밭, 그것을 둘러 싼 아담한
법당, 자그마한 아래채와 해우소. 그게 전부다. 고요의 풍광 속을 키 큰 후
박나무가 지키고 서 있다. 법정 스님이 평소 좋아하던 벗이었다. 여행 후
돌아올 때마다 껴안아 주었다 하는데, 지금은 스님이 그 나무 아래 흙이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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