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6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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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선 안 된다. 용서는 그 장벽을 허무는 기능이다. 진정한 상생과 참된 공
동체는 차별이 없어야 이루어진다. 만일 용서가 없다면 상생 또한 불가
능하다.
우리 사회에는 용서에 인색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불교계에서도 파사
현정破邪顯正의 논리를 앞세워 단죄를 먼저 주장하는 불자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그래야 사회정의가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백
담사에 유배되었을 때 재야불교단체들이 앞장서 체포조를 결성하고 백담
사로 몰려 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뿐만 아니다. 사회 지도층 인사의
비리나 범죄행위가 드러났을 때도 불교계 일부에선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
고 나선다. 물론 이를 잘못됐다고 탓하자는 건 아니다. 다만 사회변혁의 운
동논리에도 용서의 정신이 바탕에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
을 뿐이다.
용서가 없는 사회는 진정한 화합과 소통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시민운
동이든 노사문제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아무리 좋은 명분을 내세워도
어느 누구든 피해를 입고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긴다면 세상은 각박해질 수
밖에 없다. 무한의 자비, 즉 보살의 마음은 용서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알
았으면 좋겠다. 조주의 ‘돌다리’를 건너는데 차별이 있어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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