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8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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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물론 남을 섬길 수 있다. 그렇다고, 아귀의 단계, 즉 경전공부는 반드
           시 거쳐야 한다. 문자 공부를 선행한 연후에 대자유 인간을 깨달을 수 있
           다. 개념과 논리이해에 대한 이해가 철저한 다음, 활구活句의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채약홀미로採藥忽迷路
             약초를 캐다가 문득 길을 잃었는데

             천봉추엽리千峯秋葉裏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들었네.
             산승급수귀山僧汲水歸
             산승이 물을 길어 돌아가고

             임말차연기林末茶烟起

             숲 끝에서 차 달이는 연기가 피어나네.
                                  - 이이李珥(1536∼1584, 산에서[山中])



             시정詩情의 분위기가 편안하다. 산길은 잃었는데도 당황하는 표정이 전

           혀 없다. 오히려, 고개를 들어보니 사방의 가을경치가 들어온다. 봉우리
           마다 하늘을 도화지圖畫紙 삼아 꽃처럼 단풍을 피웠다. 가만 보니 인적人
           跡도 보인다. 호젓한 산길을 따라 시선視線이 닿는 곳에 차 달이는 연기가

           오르고 있다. 약초 캐는 일만 하면 발견하기 불가능한 장면이 아닐 수 없

           다. 생각해 보면, 보는 것만 그렇겠는가. 듣는 것도 그렇고, 향기를 맡거나
           맛보면서 느끼는 모든 것이 그 방편에 따라서 미로迷路가 득도得道가 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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