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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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은 십 구문 반.//아랫목에 모인/아홉 마리의 강아지야/강아지 같은 것들
            아./굴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아니 십
            구문 반의 신발이 왔다./아니 지상에는/아버지라는 어설픈 것이/존재한

            다./미소하는/내 얼굴을 보아라.”

              지상에는 아버지라는 어설픈 존재가, 구문 반의 책임감으로, 웃으며 ‘굴
            욕과 굶주림의 추운 길을 걸어’ 온 것이다. ‘내가 왔다./아버지가 왔다.’는
            대목에서 울컥 눈물이 난다. 수행자의 신발도 그런 신발 아닌가. 아버지가

            온 것이 아니라 ‘구문 반의 신발’이 ‘온 것’이다. 그런 의미가 성큼성큼, ‘굴

            욕과 굶주림과 추운 길’을 ‘걸어서’ 왔던 것이다. 수행자는, 아니 삶의 주인
            공들은 그런 길을 홀로 걸어서 왔다 간다.
              최근에 나온, 법정 스님의 사유노트와 미발표 원고를 모은 『간다, 봐라』

            라는 책의 앞머리에 실린 내용이다. “스님 임종게臨終偈를 남기시지요.”라

            고 하니, 법정 스님 왈, “분별하지 마라. 내가 살아온 것이 그것이니라. 간
            다, 봐라”
              잠시 이형기의 시 ‘낙화’를 생각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얼마나 아름다운가”

              떠날 수 있는 마음은 ‘완전한 포기’를 말한다. ‘완전한 자포자기’, ‘기꺼
            이 단념하는 마음’이다. 법정 스님은 말한다.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무엇
                                                   6)
            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포기가 아니다” 라고. 즉 “포기란 보다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기꺼이 단념하는, 구도자에 의해서 수행되는 가장 현

            명한 길이다. 그것은 영원한 기쁨을 위해 덧없는 감각적 쾌락을 포기하는






            6)  법정 스님, 『간다, 봐라』, 리경 엮음, (김영사, 2018),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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