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1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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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전한다. ‘섭마등이 『사십이장경』 1권을 번역해 처음 난
대蘭臺의 석실 열네 번째 칸에 봉하여 두었다. 섭마등이 머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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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처는 지금 낙양성 서옹문 밖 백마사이다.’”
“축법란도 역시 중천축 사람이다. … 『사십이장경』 등 다섯 부를
번역했다. … 강좌江左에는 오직 『사십이장경』만이 지금도 남아
있는데 이 천여 단어 가량 된다. 중국 땅에 현존하는 여러 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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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은 이것을 시초로 삼는다.” (강조는 필자)
그런데, 남조 양나라 스님 승우僧祐(445∼518)가 510년에서 518년 사이에
편찬한 『출삼장기집·권2』에는 “『사십이장경』 1권 (구록舊錄에는 한나라 『효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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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사십이장』이라 했다. 도안이 편찬한 목록에는 이 경이 없다.)” 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며, 수나라 학승學僧 비장방이 597년 펴낸 『역대삼보기·권4』에는 “가
섭마등. 『사십이장경』 1권. 이상의 1경은 명제 때 중천축국 사문 가섭마등
이 번역한 것이다.” 라고만 적혀있다. 축법란의 이름이 없다. 종합하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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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이름이 ‘카쉬야파 마탕가’인 가섭마등이 번역한 『사십이장경』이 최초의
한역 경전이라는 것이다.
현대 중국을 대표하는 불교학자 가운데 한 명인 탕용통(湯用彤. 1893∼1964)
은 『한위양진남북조불교사』제3장에서 “동한(후한) 때 이미 『사십이장경』이
11) [南朝梁]釋慧皎撰·湯用彤校注, 『高僧傳』, 北京:中華書局, 1992, pp.1∼2.
12) [南朝梁]釋慧皎撰·湯用彤校注, 『高僧傳』, 北京:中華書局, 1992, pp.3.
13) [南朝梁]釋僧祐撰·蘇普仁/蕭鍊子點校, 『出三藏記集』, 北京:中華書局, 1995, p.23.
14) T.49-p.49c. T는 『대정신수대장경』, 49는 권수, p.49는 49페이지, 알파벳 c는 해당 페이지의 하단
을 가리킨다. 이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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