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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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왔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후한 때 『사십이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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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미 있었다는 것은 정말 의심할 수 없다.” 고 주장했다. 그런데, 여기
           에 의문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탕용통과 더불어 현대 중국을 대

           표하는 불교학자 가운데 한 명인 뤼청(呂澄. 1896∼1989)도 반대파에 속한다.

           『중국불학원류강의』라는 책에서 그가 지적했다.


                “『사십이장경』은 처음 전래된 경전도 아니고, 직접적인 번역본

                도 아니다. 경전 초록抄錄이다. 내용적으로 볼 때 『법구경』에서

                초록한 것이다. … 현존하는 『법구경』은 삼국시대 지겸이 번역
                한 것이다. 지겸支謙이 쓴 서문에 의하면 지겸이 번역하기 전 또
                다른 번역본이 있었다. 따라서 한나라 말기에 이미 『법구경』이

                있었던 것이다. 『사십이장경』은 마땅히 지겸 이전에 번역된 『법

                구경』에서 초록해 윤색한 것이다. 『사십이장경』의 출현은 상당
                히 늦은 후대일 것이다.”      16)



             사실, 전한 말 후한 초 전래된 불교는 당시 서역에서 중국에 들어와 있

           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신앙되고 있었다. 그러나 광무제 유수의
           넷째 아들인 유장(劉莊. 후한 제2대 황제 명제明帝. 28∼57∼75) 이 황제로 있던
                                                           17)
           당시에 경전 번역이 시작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고 신앙인







           15) 湯用彤著, 『漢魏兩晉南北朝佛敎史』, 北京:北京大學出版社, 1997, p.24.
           16)  呂澄著, 『中國佛學源流略講』, 北京:中華書局, 1979, p.21.


           17)  맨 앞의 숫자는 태어난 해, 가운데 숫자는 황제에 즉위한 해, 마지막 숫자는 타계한 연도를 각각 나
              타낸다. 이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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