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4 - 고경 - 2018년 9월호 Vol.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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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寒風을 맞아 입에서 흰 거품을 토했다.” “나는 여기서 살아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빨리 갈 수 있을 때 가십시오. 우물쭈물하다 함께 죽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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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됩니다.” 말을 마친 혜경이 입적했다. 법현은 그의 몸을 어루만지며
비통하게 울부짖었다. “본래 목적을 이루지도 못했는데 중도에서 입적하
니 이 무슨 일이오!” 여유를 갖고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도반의 죽음을 뒤
로한 법현은 계속 나아가 마투라를 거쳐 중인도에 위치한 도시 상카시에
도착했다. 404년(69세)이었다. 장안을 출발해 5년 만에 상카시에 다다른 그
는 인도에서 6년 정도 머무르며 사위성·왕사성·영취산·대보리사·파
트나 등 불교 유적을 두루 탐방하고 범어를 익혔다.
409년 10월경 스리랑카로 가 그곳에서 2년 동안 경經을 필사하며, 미사
색부의 율장 등을 구했다. 411년 귀로에 올랐다. 인도네시아를 거쳐 동진
의희 8년(412년 7월) 그의 나이 77세 때 산동성 청주의 뇌산牢山 남쪽 해안에
도착했다. 413년 동진의 수도 건강(남경)으로 간 그는 인도에서 필사하고
구해온 경·율을 번역하기 시작했다. 도량사道場寺에서 『대반니원경』(6권),
『마하승기율』(40권) 등을 불타발타라와 함께 옮겼다. 당시 인도 구법여행의
감회를 적은 글이 『법현전』에 남아있다. “지나간 곳을 돌이켜 보면 나도 모
르게 땀이 솟아 흐른다. 몸을 아끼지 않고 위험한 곳을 밟고 험준한 곳을
건넌 이유는 오로지 우직하게 마음먹은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죽는 곳에 목숨을 던져 만분萬分의 일一의 희망을 달성했다.” 법현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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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述懷는 중국불교가 왜 발전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39) T.51-p.859a.
40) T.51-p.859a.
41) T.51-p.866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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