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0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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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비구가 참여해 경과 율을 묶었다. 경모經母(경의 목차)와 율모律母(율의 목
           차)도 확정했다. 물론 문자로 기록된 것은 아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
           는 구전口傳 방식으로, 결집된 경과 율이 불교도 사이에 전파됐다. 아쇼카

                                                            5)
           왕(기원전 268년 즉위. 기원전 264년 관정灌頂. 기원전 230년 타계) 이 통치하던 시
           기 이후부터 경과 율이 점차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붓다가 입멸한 지 110년 정도 지난 뒤인 기원전 370년 무렵, 제2차 결
           집이 진행됐다. 남전南傳불교 자료인 『도사島史』·『대사大史』·『논사論事』 등

           에 의하면 바이샬리 비구들이 신도들로부터 금과 은을 직접 받는 등 ‘계율

           과 맞지 않는 열 가지 일’ 이 문제가 되어 비구 칠백인이 바이샬리에 모여
                                6)
           경과 율의 내용을 결집했다. 당시 열 가지 일이 법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상좌부, 이들의 결정에 반대한 사람들은 대중부를 형성했다. 이

           를 계기로 ‘조화로운 하나의 맛[一味和合]’을 유지하던 교단은 점차 분열되

           기 시작했다. 불전北傳불교 자료인 『아비달마대비바사론』(권제99)·『이부종
           륜론』 등에 따르면, 대천大天이라는 이름을 가진 비구가 주장한 ‘다섯 가지
           일’ 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 교단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기
             7)
           원전 370년 무렵부터 기원후 150년 경 대승불교가 유행할 때까지 18부(남

           전 자료) 내지 20부(북전 자료) 정도의 부파가 생겼다. 이 시기 불교를 부파불










           5)  呂澄著, 『印度佛學源流略講』, 上海:世紀出版集團, 2005, p.27.

           6)  이를 십사비법十事非法이라 한다. 십사비법에 대해서는 『미사색부화혜오분률』 권30 「칠백집법」을 참조

             하라. T.22-p.192a∼b.
           7)  대천의 다섯 가지 일에 대해서는 『이부종륜론』과 『아비달마대비바사론』 권제99(T.27-p.511b∼c)를 참조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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