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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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음미하는 부처님 말씀 5



                          ‘먹고 사는 일’의 거룩함



                                                      윤제학 | 작가·자유기고가





             한 책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조금 길지만 그대로 옮겨 보겠습니다.




             그 여자를 본 곳은 한 대형 마트 계산대 앞이었다.
             여자의 등에는 아이가 업혀 있다. 아이의 목은 간신히 머리를 매단 것처
           럼 심하게 꺾였다. 깊이 잠든 모양이다. 이런 아이를 볼 때마다 나는 불안

           감을 느끼기보다는 내심 탄성을 지르게 된다. 저러고도 멀쩡할 수 있다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길게 한 바퀴 돌린 다음 오른쪽 어깨 방향으로 꺾어
           본다. 아이의 각도에 미치려면 턱없이 부족하다. 역시 나는 어른인 게 확
           실하다. 내가 왜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됐을까. 이유는 없다. 굳이 찾는다면,

           쓰레기 분리 배출을 하듯이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낸 다음이었다는 것이

           다. 나는 당분간 시간을 최대한 낭비하는 데 몰두해야 한다.


                “어이, 박 대리.”

                늘 듣던 부장의 목소리다. 나는 늘 하던 대로 속으로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아홉.’
                “어이, 안 들려.”

                숫자 세기는 아홉에서 멈춘다. 대신 소리 내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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