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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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아서 여자에게 손수건을 건넨다. 돌아서면서 나는 하나, 둘, 셋 숫자를
           세는 연습을 다시 시작한다. 앞으로는 절대 아홉에서 멈추는 일은 없을 것
           이라고, 몇 번이고 다짐한다.




             지난 호에 이어서 또 ‘밥’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호의 이야기
           는, ‘걸식’이야말로  출세간의 수행자를 고귀하게 하는 행위라는 것이었습
           니다. 이번 호에는 세간의 사람들에게 ‘밥’이란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얘기

           해 보려 합니다.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람은 밥에게
           먹히기도 합니다. 세간이든 출세간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밥에 먹히

           는 경우는 세간과 출세간이 반대입니다. 출세간의 수행자가 스스로 (돈을
           벌어서) 밥을 먹는다면, 그것은 밥에 먹히는 것입니다. 죄(범계)가 됩니다.

           세간의 사람들이 스스로 벌어먹지 않으면, 그것이 밥에 먹히는 것입니다.
           죄가 됩니다. 밥버러지 수준이라면 도덕적으로 죄가 되겠지요. (대놓고 말을
           못 할 뿐이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골칫덩어리인 불로소득도 이에 해당합

           니다. (물론 세금으로 그 죄를 탕감받긴 합니다만.) 빼앗아 먹거나 훔쳐 먹으면 당

           연히 사법적으로 죄가 됩니다.
             앞에서 읽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밥이 만든 죄인’입니다. 배고픈 아이에
           게 먹이기 위한 것이었어도 훔치는 건 명백한 범죄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이 다 죄를 짓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만으

           로는 그 여자의 사정을 다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추정은 가
           능할 것입니다. 남편이 집을 나갔다. 이혼 상태도 아니다. 법적으로는 엄
           연히 남편이 있기 때문이 정부 보호 대상이 아니다. 갓난아이 때문에 취직

           을 하기도 어렵다. 일가친지로부터 받을 만큼 도움을 받았다. 밤새워 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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