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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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잔뜩 공기를 부풀려 담은 시금치가 계산대 위에 놓인다. 하나씩 담긴 투
           명 봉지 속의 채소들이 빤히 나를 쳐다보는 것 같다. 나는 재빨리 감자의
           움푹 들어간 부분에서 눈과 코를 찾는다. 그런데 도무지 입을 찾을 수 없

           다. 감자는 울상이 된다. 이번에는 감자와 눈을 마주칠 수 없다. 나는 또

           아기의 목으로 눈길을 옮긴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아기 포대기 아
           래로 보이는 엄마의 파르르 떨리는 손이다.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듯 깡
           통이 바동거린다. 작은 분유통이다. 나도 모르게 아기에게 바짝 다가간다.

           손가락 끝으로 살짝 분유통을 들어 올린다. 아이 엄마가 돌아본다. 조금 전

           감자의 얼굴과 똑같다.
             나는 내가 산 물건을 최대한 어지럽게 계산대에 올리고는 계산도 끝나
           기 전에 카드를 내민다. 계산원의 시야를 가리는 위치에 선다. 평소에는 하

           지 않던 포인트 적립까지 한다. 일부러 두 번이나 틀리게 번호를 입력한다.

           천천히 봉지에 물건을 담는다. 이것저것 많은 물건을 사지 않은 것을 후회
           한다. 그래, 이 정도면 아이 엄마가 안전하게 마트를 벗어났겠지, 하고 한
           숨을 돌린다. 짜릿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살아 있다는 실감.




             에스컬레이터 앞이 왁자지껄하다. 보안 직원의 한 손에는 영수증, 다른
           한 손에는 분유통이 들려 있다. 나는 천장에 매달린 CCTV를 한참 동안 쏘
           아 본다.

             여자를 둘러싼 사람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텔레비전 뉴스 화면을 보는 듯, 사태의 전말은 환히 알지만 어떤 개입도 않
           겠다는 태도. 나는 아이가 이 와중에도 깨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
           다.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정도 변명도. 보안 직원은 사무실로

           가자고 다그친다. 울면 안돼, 울면 안돼, 하면서 여자의 정면으로 다가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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