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P. 49
본래의 ‘마음자리’는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순수한 모습이다. 예로부터
텅 비고 밝아서, 부족함이 없으니 다른 무엇을 찾고 구할 것이 없다. 그래
서 보물창고다. 이를 간파하는 이에겐 가난이란 없다. 무엇을 구할 욕심도
없고 집착도 없다. 오히려 텅 비어서 얼마든지 채울 수 있다.
돈은 밖에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보물창고를 잘 가꾸
어 활짝 개방하면 청세 스님의 가난은 본래 만들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보물창고는 자신만을 위해 개방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나누지 않는 보물창고는 폐허가 될 수 있다. 『잡아함경』에 이
런 말씀이 나온다. “넓은 들판에 호수가 있어 그 물이 맑고 깨끗하여도 그것
을 쓰는 사람이 없으면 스스로 말라 없어지나니, 아무리 귀한 재물일지라도
어리석은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자기를 위해서 써보지도 못하고 남을 위해
베풀지도 못하면서 모으고 지키느라 걱정만 하다가 임종과 함께 모두 잃고
마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이 재물을 얻으면 자기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 쓸 줄
도 알고 베풀 줄도 알아 그 목숨을 마친 뒤에는 천상에 태어나리라.”
내 의식의 변화를 다른 이와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가난과 부의 행복이
다르지 않다. 인류의 행복과 미래는 그러므로 물질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순수하여 텅 비고 밝은 마음자리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귀한 보물창고는 없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로 태어났지만 이미 우리는
넉넉하다. 따라서 넓은 들판의 호수처럼 다른 이에게 크게 선심 쓰며 살 일
이다. 청원 백가의 술잔이 지천에 널려 있음을 간파하자.
김군도
자유기고가. 선시 읽는 법을 소개한 『마음의 밭에 달빛을 채우다』
를 펴내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오도송에 나타난 네 가지 특
징」·「호국불교의 반성적 고찰」 등의 논문이 있다.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