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8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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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라 서로 소통하고 어우러지는 상즉相卽의 존재임을 설명하는 교설이다.
화엄에서 법계의 작용을 설명할 때 등장하는 개념이 체體와 용用이다.
체體는 본질 또는 본체를 말하며, 용用은 체의 작용을 말한다. 예를 들어 대
기의 순환이 체라면 그로 인해 내리는 비는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대기
의 순환이 없으면 비가 오지 않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대기는 순환하지 않
는다. 체의 측면에서 보면 서로 다른 존재지만 사실은 동일하기 때문이 ‘서
로 같음’이라는 상즉相卽이 된다. 이런 원리를 확장하면 나무가 곧 돌이고,
돌이 곧 나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 나무는 곧 돌이므로 돌이라는 특성을
빼앗고, 돌은 곧 나무이므로 나무라는 특성을 빼앗는다. 따라서 상즉이라
는 특성은 서로의 특성을 빼앗는 상탈相奪이라는 특징도 갖게 됨을 알 수
있다.
용用의 측면에서 보면 서로 다른 존재일지라도 작용을 공유하기 때문에
너 속으로 내가 들어가고, 내 속으로 너가 들어오는 상입相入이라는 작용
이 성립한다. 각각의 특성이 서로에게 침투하면서 돌은 나무의 특성에 기
대고, 나무는 돌의 특성에 기대게 된다. 따라서 작용을 설명할 때는 ‘서로
의지함’이라는 상의相依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문상입은 상입에 대한 설
명이므로 작용의 측면에서 존재들이 ‘서로 의지함’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이상과 같이 존재를 작용의 관점에서 보면 상입과 상의라는 특징을 동시
에 띤다.
주지하다시피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는 인연에 의해 존재한다고 설명한
다. 인연이라는 개념은 인因과 연緣이라는 두 개의 의미가 합쳐진 말인데,
인은 주主가 되고 연은 객客에 해당한다. 『십지경론』에 따르면 “인에서 생
기는 것이 아니고 연에서 생기며[因不生自緣生], 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인에서 생긴다[緣不生自因生].”고 했다. 하나의 존재는 인만으로는 발생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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