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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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 사이의 교류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불교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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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적으로 남북 왕조의 비호를 받았다.  이와 같은 변화에 대응하면서 불교
            계는 교리를 재정립하고 이를 통해 불교를 부흥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초기대승경전들이 만들어졌고 그 중에서도 반야계

            경전들은 ‘공空’을 전면에 내세우며 인도의 뿌리 깊은 실재론적 사고를 비
            판하기 시작했다. 사회적인 원인도 다소 있었던 듯하다. 당시 실재론적 사
            유체계를 확립한 인도 정통 철학학파는, 심지어 불교내부의 실재론적 경

            향을 갖는 학파들조차도 인도의 주류계층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사

            상은 오랜 역사를 통해 구축된 것이었고 그 만큼 정치하고 복잡한 사유구
            조를 확립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체계를 비판하고 불교 본연의 모
            습으로 돌아가자는 대승불교의 발생에는 당시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맞물

            려 일반대중들의 요구가 깃들어 있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미 정립되어 있는 체계는 진리이고 그러므로 암묵적으로 순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렵고 복잡한 교리체계에 얽매이지 않아도 자유롭게 자신의
            상황에 맞는 깨달음을 찾아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편으로 반야계 경전들은 존재론적인 측면의 ‘공’

            을 강조하였다. 당시 불교내부의 학파 중 설일체유부의 논사들은 실제로
            존재하고 나누어지지 않으며 항상 있는 것, 즉 다르마(dharma, 法)가 있다
            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 다르마는 세상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 개념일

            뿐인 것과는 구분된다. 왜냐하면 다르마에는 고유한 성질(自性, svabhāva)이

            있고 후자에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같은 고유한 성질을 갖는 것은 같은 다





            1)  중관관련 저서와 논문들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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