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0 - 고경 - 2018년 10월호 Vol. 66
P. 70

야 한다. 이 때 씨앗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는 힘과 새싹으로 돋아나려는
           힘이 동시적으로 존재한다. 이 두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서 씨앗
           의 상태가 달라진다. 씨앗으로 싹트려는 힘이 유력이라면 씨앗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힘은 무력이라고 할 수 있다. 싹트려는 힘이 있고, 씨

           앗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은 없을 때 씨앗은 새싹으로 변한다. 반면 씨앗
           을 싹틔우려는 힘은 없고, 씨앗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이 있다면 씨앗의
           상태는 그대로 유지된다.

             이처럼 존재란 곧 어떤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기도 한데, 그 상태를 결정

           짓는 것은 완전하게 힘이 작용하는 유력과 어떤 힘도 작용하지 않는 무력
           이라는 함수이다. 이 두 힘의 상호작용에 따라서 씨앗이 싹을 틔우기도 하
           고, 씨앗의 상태로 유지되기도 한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유력과 무력의 동

           시적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상태이며, 그 두 힘의 중도적 상태가 그 존재

           를 규정한다고 할 수 있다.
             만약에 씨앗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힘과 새싹으로 돋아나려는 힘이 동시
           에 작용한다면 연기의 원리가 성립하지 못하기 때문에 씨앗은 싹을 틔울

           수 없다. 힘이 작용하는 유력과 힘이 작용하지 않는 무력이 동시에 요철凹

           凸처럼 맞아떨어져야 서로의 힘이 서로에게 침투하는 상입相入이 되고, 그
           두 힘이 서로에게 의지하는 상의相依가 되어 연기가 성립한다.
             만약 유력만 있거나 무력만 있으면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이에 대해 법

           장은 “유력만 있고 무력이 없으면 결과가 많아지는 허물이 발생한다[有多

           果過].”고 했다. 씨앗의 상태로 남고자 하는 힘도 있고, 새싹으로 피고자 하
           는 힘도 있다면 새싹과 씨앗이 동시적으로 생기는 오류가 발생한다. 새싹
           이면 새싹이고, 씨앗이면 씨앗이지 새싹이면서 씨앗일 수는 없다. 반면 “무

           력만 있고 유력이 없으면 결과가 없는 오류가 발생한다[有無果過].”고 했다. 씨앗



           68
   65   66   67   68   69   70   71   72   73   74   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