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4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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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것이 가게·점포에서 행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혜달) 스스로 강의한 지
           20여 년이며, 혹은 강의를 들은 지 20여 년 되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頗逢重席, 末觀斯論”者, 頗亦曾逢重席, 末後方見此論耳. 重席 者, 漢
                                                                   48)
           帝令諸儒講論, 勝者奪劣者席, 戴憑 獨坐五十重席. 時人曰: “說經不窮, 戴
                                        49)
           侍中也.” “聊寄一序, 託悟在中”者, 寄託悟懷在序內也. “同我賢余, 請俟來

           哲”者, 俟待也. 同於我者, 賢於余者, 待後明哲也.
             “여러 번 자리에 앉았지만 마지막에서야 『조론』을 보았다.”는 자주 중요

           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비교적 늦게 서야 『조론』을 읽었다는 것이다. ‘중석重

           席’과 관련된 고사가 있다. 후한 광무제가 여러 유학자들에게 논강을 해 우
           승자에게 패배자의 자리를 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빙이 홀로 방석 50여
           개나 깔린 좌석에 앉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유교 경전 해설에 막힘

           이 없는 대시중.”이라는 말들을 했다. “간략하게 서문을 쓰서 나의 깨달음

           을 피력했다.”는 (혜달이) 깨달은 바를 서문에 풀어놓았다는 것이다. “학식
           이 나와 비슷한 분은 이 서문을 보시고, 나보다 뛰어난 분은 청컨대 후대
           의 명철한 분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시라.”에서, 사俟는 기다리다는 뜻이

           다. 학식이 나와 비슷한 분, 나보다 뛰어난 분은 후대의 명철한 분이 나타

           날 때까지 기다리시라.
             [단락 ②는 “혜달은 20여 년간 연속해 논소에 관한 강의를 했고, 여러 번 중요한 자리

           에 앉았지만 비교적 늦게 서야 『조론』을 읽었다. 간략하나마 서문을 지어 나의 뜻을 부친







           48)  ‘중석重席’의 원래 의미는 ‘방석을 두 개나 깐 자리’이다. 이것이 ①높은 자리, 고관 ②학문이 뛰어난
              학자 ③근검절약 하지 않는 사람 등으로 뜻이 확장되었다. 여기서는 ①학문이 뛰어난 학자 ②여러
              번 중요한 강석에 참석했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번역에는 ②를 채택했다.
           49)  『후한서 권79상上·유림열전 제69상上』에 대빙의 전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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