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1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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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깨끗이 하고 마음을 비우면) 모든 것을 완전히 없애면, 진제·속제가
저절로 체득된다.”는 앞의 「물불천론」과 「부진공론」을 가리킨다. ‘청이淸耳’
는 조용히 듣는 것이며, ‘허금虛襟’은 생각을 비우는 것이다. ‘무언無言’은 진
리를 체득하는 것이다. ‘이제二諦’는 진제·속제이다. “이는 바로 권지權
智·실지實智의 작용이 드러나는 것, 따라서 반야에는 범부의 분별심이 없
다.”는 구절에서 저著는 ‘뚜렷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반야의 지혜가 능히
이와 같이 작용한다는 것이 ‘반야무지’의 의미이다. “무명의 덕이 일어나기
에 열반이라 이름 붙일 수 없다.”는 것에서 흥興은 일어난다는 것이다. 반
야의 지혜로 제법을 체득하는 것에 이름을 붙일 수 없다는 것이 ‘열반무명’
의 의미이다.
[단락 ④는 “비록 성공으로 ‘가르침의 근본[宗本]’을 논의하고자 하나, ‘근본’은 본래 형
상과 이름이 없기에 무엇으로도 말할 수 없다. 본래 언어로 근본을 설명할 수 없기에 마음
(분별심)이 능히 헤아릴 수 있는 바가 아니다. 그러한 즉 사물이 ‘움직이지 않음’은 속제에 합
당한 것이며, 속제에 맞는 즉 불생(진제)이다. 참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 진짜이며, 진짜는
단지 ‘가짜 이름’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진제·속제를 완전히 제거하면 중도
의 진리가 저절로 드러나며, 모든 것을 완전히 없애면 진제·속제가 자연히 체득된다. 이
는 바로 권지權智·실지實智의 작용이 드러나는 것, 즉 반야에는 범부의 분별심이 없다. ‘무
명無名의 덕’이 일어나기에 열반이라 이름 붙일 수도 없다.”로 번역할 수 있다.]
[6] [본문] ① 余謂此說周圓, 罄佛淵海, 浩博無涯, 窮法體相. ② 雖復言約
而義豐, 文華而理詣. 語勢連環, 意實孤誕. ③ 敢是絶妙好辭, 莫不竭茲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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