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4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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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 이야기 6



                       꿈 없는 멋진 잠 같은 멸진정



                                                 정은해 | 성균관대 초빙교수·철학





             불교에는 멸진정滅盡定이라는 매우 어려운 낱말이 있다. 낱말 뜻도 어렵

           지만, 낱말이 가리키는 사태의 체험은 더더욱 어렵다. ‘멸진’은 번뇌가 소

           멸되어 사라짐을 말하니, 열반 곧 죽음을 가리킨다. ‘멸진정’은 마음[心]과
           마음작용들[心所]이 소멸되어 사라진,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같은 상태의
           선정을 말한다. 물론 멸진정은 죽음도 아니고 잠도 아니다. 그럼에도 잠과

           도 유사하고 죽음과도 유사하다. 죽음이 잠과 같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

           사람은 소크라테스이다. 소크라테스는 청소년을 오도했다는 죄목과 신에
           게 불경했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후 재판관들 앞에서 죽음에 대
           해 다음과 같이 연설했다고 한다:




                “죽는다는 것은 둘 중 하나입니다. 죽는 사람이 완전히 소멸되
                어 아무 감각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거나, 어떤 변화가 일
                어나 영혼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는 것이겠지요. 그런

                데 만약 죽음이 감각을 상실하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꿈 없는

                잠이라면, 죽음은 참으로 멋진 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사
                람이 아무 꿈도 꾸지 않고 푹 자고난 밤을 골라, 그 밤을 자기
                일생의 나머지 모든 밤낮과 비교해본다고 칩시다. 그 사람에게

                일생에서 이 하룻밤보다 더 멋지고 즐거운 밤을 몇 번이나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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