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6 - 고경 - 2018년 11월호 Vol.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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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잠깐 꿈속을 살다 기꺼이 죽음을 건너리
초연독보만고진超然獨步萬古眞.
만고 진리를 위해 초연히 홀로 걸어가리라
- 성철(性徹, 1912~1993), 출가시.
선기禪器가 넉넉하다. 양 극단의 의미를 가진 단어의 전달력이 강렬하
다. 먼저 ‘화롯불과 백설’이 공존하고, ‘밝은 햇볕과 새벽이슬’이 의미의 양
변을 비춘다. 이어, ‘잠깐 꿈’과 ‘만고 진리’가 ‘시각의 간격’을 만들어, 찰라
와 영겁을 통섭한다.
선기禪氣도 번뜩인다. ‘하늘 가득찬 대업彌天大業’과 ‘바다를 넘는 웅장한
기틀跨海雄基’이 분명하다. 이어, ‘생사를 넘은 정진력[誰人甘死 - 超然獨步]’이
오롯이 부각된다. ‘출가시’의 기치가 ‘그 이후 정진’으로 이어져, ‘시의 생명’
이 살아 있다. 출가시와 오도송와 임종게가 선순환을 이룬다. 실제 스님은
인생을 통해, ‘시와 삶’이 둘이 아님을 증명했다. 나아가, ‘출가시의 언어’에
도 머물지 않고, ‘시계열時系列의 견조세堅調勢’를 유지했다. 입체언어立體言
語 메시지가 살아있는 선맥禪脈이 아닐 수 없다.
① 청산경객지靑山敬客至 두대백운관頭戴白雲冠
푸른 산에 찾아온 손님께 인사하려고, 머리에 흰 구름 모자를 쓰고
② 설락천산백雪落千山白 천고일월명天高一月明
천개의 산은 눈 내려 하얗고, 밝은 달은 하늘 높이 환하게 비추네
③ 소산폐대산小山蔽大山 원근지부동遠近地不同
작은 산은 어떻게 큰 산을 가렸을까! 멀고 가까운 거리가 달라서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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