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58 - 고경 - 2019년 2월호 Vol.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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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 깨닫게 할 수 있다. (다만) 세간의 견해에 부합하지 않기에 세간에 들어

           갈 수 없다. 근기가 높은 선비는 진리를 들으면 힘써 이를 실행하고, 중
           간 근기의 선비는 진리를 들으면 옳은가 옳지 않은가 의심한다. 즉 의심

           과 믿음이 반반이다. 낮은 근기의 선비는 진리를 들으면 크게 비웃어 버
           린다. 이야기가 담백해 다시 돌아보거나 사모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글은 『노자』에 나온다. 그래서 (『노자』를) 따라 해석했다.
             ③ “近而不可知者, 其唯物性乎?” 初句事俗流動名近, 卽眞不遷難知. 後

           句屬體. “然不能自已(止也), 聊復寄眞心於動靜之際, 豈曰必然. 試論之曰.”
           然者, 猶云雖然. 中下疑笑, 要使眞言不滯, 宗途大明常情悟入, 欲罷不能,

           略復依言寄眞一之心於動靜之際, 未敢必是, 但試爲論之謙也.
             ③ “알기 쉬울듯한데 알기 힘든 것이 바로 사물의 본성이라네!” 첫 구

           절에 나오는 ‘근近’은 세간 사람들의 견해인 변화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진리인 ‘변화하지 않음’을 알기 어렵다. 뒤 구절은 본체에 속한다.

           “그렇지만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해(이已는 ‘그치다’는 의미다), 간략하게나마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의 관계·도리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어찌 내

           말이 반드시 옳다고 하겠는가! 시험 삼아 말해 보겠다.”에서, ‘연然’이라는
           것은 ‘오히려’ ‘비록 … 이나’라는 뜻이다. 중간 근기의 사람들은 의심하고

           낮은 근기의 사람들은 웃어 버리기에 ‘진리의 말씀’이 걸리지 않고, ‘진리
           의 큰 밝음’이 보통 사람들을 깨닫게 하는 것을 그만둘 수 없어, 말에 의

           지하고 진실한 하나의 마음에 기탁해 동動과 정靜의 문제를 간략하게 말
           하고자 한다. ‘감히 옳다고 할 수는 없고, 다만 시험 삼아 논의하겠다.’라

           는 것은 겸손의 말이다.



             [주석 3-5. 감산주] ① “然則動靜未始異, 而惑者不同. 緣使眞言滯於競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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