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7 - 고경 - 2019년 3월호 Vol.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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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① 『도행반야경』은 “모든 사물·현상은 본래 어딘가에서 온 것이
없고, 간다한들 다다를 곳이 없다.”라고 말했다. 『중론』 「관거래품」 역시
“어떤 장소에서 어떤 사물이 가는 것을 보지만, 간 것이 어떤 곳에서 다
른 어떤 곳에 이르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은 변화(움직임)를
통해 불변(움직이지 않음)을 논증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물은 움직이지 않
는다는 것이 명백함을 알 수 있다. ② 무릇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움직임
은 옛 물건이 지금에 오지 않기에 ‘변하는 것이며 변하지 않음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소위 변하지 않음(움직이지 않음) 역시 과거
의 물건이 지금에 오지 않기에 ‘변하지 않음(움직이지 않음)이며 변하는 것
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다. [20대의 나, 50대의 나. 일반인이 보기엔 20대
의 나의 얼굴과 50대의 나의 얼굴이 서로 변해 다르다. 그래서 움직임이
있다; 반면 승조가 보기엔 20대의 나는 사라지지 않은 채 영원히 그 자리
에 있고, 50대의 나는 지금 여기 있다. 따라서 변하지 않음만 있지 변화
가 없다.] [과거의 사물이 현재에 오지 않는다는 점은 같다.] (보통 사람들
은) 과거의 사물이 원형을 유지하면서 현재에 오지 않기에 ‘움직이고 가
만히 있지 않는다’고 생각한다(20대의 나와 50대의 나의 얼굴이 서로 다르므로 변
화가 있다. 이는 과거의 사물이 그대로 현재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나는 즉 승
조는) 과거의 사물은 그 자리에 머물러 사라지지 않고 있기에 ‘움직임(변
화)이 없다’고 생각한다(20대의 나는 20대 그 자리에 서있고, 50대의 나는 지금에
있다. 이는 과거의 사물이 그 자리에 있지 현재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③ 그러므로
보는 것은 다르지 않은데 견해는 서로 같지 않다. 견해가 교리와 어긋나
면 막히는 것이고, 교리와 어긋나지 않으면 막힘이 없다. 만약 가르침을
체득한다면, 어찌 걸림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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