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09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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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 포함되는 도융에게 있었던 특별한 사연이 『고승전』에 기록되어 있

            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총명 박식한 서쪽 사자국師子國의 외도外道의 종사인 한 바라문婆羅門이

            구마라집이 장안에서 불교만을 전파하는 것을 시기하여, 낙타를 타고 서
            책을 지고 중국에 찾아와, 중국 승려와 승부를 겨루어 이기는 쪽이 교화

            하자고 제안하였다. 후진의 요흥왕이 그의 비범한 용모에 미혹하여 대결
            을 허락하였으나, 장안의 승려들은 서로 쳐다보며 감히 나서지 못하였다.

            이에 구마라집이 부탁하여 해결사로 나선 도융은 국왕과 신하, 장안의 승
            속이 운집한 궁궐에서 바라문과 대결하였는데, 도융의 예리하고 깊은 담

            론에 이론적으로 굽히는데다, 도융이 열거한 독서의 분량과 중국의 경전
            과 사서의 명목이 바라문보다 세배나 더 많았다. 결국 바라문은 역부족을

            인정하고, 도융의 발 아래 예배하고 수일 내에 떠나고 말았다. 실은 대결
            하기 전에 도융 쪽에서 사람을 시켜, 바라문이 열람한 경서의 목록을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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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껴오게 하여 보고 한 번에 암송한 도융이었다.
              그러니 그 때 도융이 외도에게 패배하였다면, 구마라집의 장안에서의

            역경과 교화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나라 현장玄奘(602~664)이 7세기 전반
            인도에 구법 수학하고 돌아와 남긴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의 여기저기에

            인도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불교 학자와 외도 바라문의 대결이 기록되어
            있다. 사상과 학설의 토론장에서 불교가 승리하면 외도 쪽이 떠나버리고,

            외도가 승리하면 불교 측이 사라졌다고 전한다. 장안의 학설 대결에서 도







            2)  앞의 책, “俄而師子國 有一婆羅門 聰辯多學…爲彼國外道之宗…聞什在關大行佛法…遂乘駝
             負書來入長安. 姚興見其口眼便辟 頗亦惑之…婆羅門心愧悔伏 頂禮融足 數日之中無何而去.
             像運再興融之力也” (T50-p36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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