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0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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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이 패배하였다면, 이후 중국에 불교와 다른 인도의 종교철학이 전파되

           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하면 도융이 사성에 거론되는 이유로 충
           분하다 뿐이겠는가.




             5) 도생道生(355~434)
             ① 도생은 어려서 출가하여 15세에 강좌講座에 오르고, 20세에 강연으
           로 명성을 떨쳤다. 45세 전후 여산廬山에 들어가 7년간 지내며 혜원慧遠

           (334~416)을 조종으로 삼은 백련결사白蓮結社의 한 명이 되었다. 이후 혜예
           慧叡·혜관慧觀·혜엄慧嚴과 함께 장안에 가서 구마라집에게 사사師事하였

           고, 409년 남지의 건강建康으로 돌아와 청원사靑園寺에서 거주하였다.
             구마라집 입멸 후, 동진의 의희義熙14년(418)에  6권 『니원경泥洹經』이

           역출되자, 이 경전을 연구하여 『니원의소泥洹義疏』를 지었다. 또 유송의 원
           가元嘉7년(430) 북본北本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이 남지로 전해지자 이 경

           전을 강론하였다. 이후 4년 뒤 여산의 정사精舍에서 입적하였다. 『이제론
           二諦論』  『법신무색론法身無色論』  『불성당유론佛性當有論』  『불무정토론佛無淨

           土論』  『응유연론應有緣論』 등을 지었으나 모두 없어지고, 『법화경소法華經
           疏』는 남아 있다. 『이제론』과  『법신무색론』 등은 반야 삼론학설 영향이 엿

           보이는 저술이다.
             ② 도생은 일천제불성설一闡提佛性說과 돈오성불설頓悟成佛說을 주장하

           여 불교역사상 잊을 수 없는 인물이 되었다. 일천제불성설은 『고승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열반경』 가운데 먼저 원시근본불교에 속하는 6권

           『니원경』이 건강에 전해지자. 일천제(一闡提, icchantika, 도저히 성불할 수 없
           다는 최하층 소질의 인간을 말함)도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의 사

           람들은 이 경전에서 아직 그렇게 설하지 않은 것이라, 도생의 주장을 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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