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2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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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 설이라고 배척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전해진 대승의 북본 40권 『대반

           열반경』에 일천제도 마침내 성불한다는 내용이 설해져 있는 것을 알게 되
           었고, 도생은 이 『대열반경』을 획득하여 강설하며, 법좌法座에서 입적하였
              3)
           다.
             ③ 또한 돈오성불설을 주장하여, 중국불교 최초의 돈오설頓悟說의 주창

                      4)
           자가 되었다.  도생이 돈오를 주장하자, 도생과 동문인 혜관慧觀은 『점오
           론漸悟論』을 저술하고, 담무성曇無成은 『명점론明漸論』을 지어 점오설漸悟說

           을 주장하였다. 반면 도생의 제자인 도유道猷·법보法寶·보림寶林과 송의
           사령운謝靈運(385~433)과 문제文帝(재위 424~452재위), 혜관의 제자 법원法瑗

           등은 돈오살을 계승하였다. 도생의 돈오설은 후대의 선종과 화엄종에 적
           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며, 화엄종 징관의 사상에도 돈오설이 반영되어 있
              5)
           다.  도생의 사상 성립 배경에는 『열반경』을 포함하여 『반야경』과 삼론학
           이 뒷받침되어 있다는 지적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지적되고 있다.

             이와 연관 지어 보면, 한국의 경우 근래 해인사의 성철 스님(1912~1993)
           이 돈오돈수를 제창해,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역설한 돈오점수를 유지한

           송광사 쪽과 대비되어 한 동안 돈점논의가 있었다. 논의의 내용이 온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중국의 초기 삼론학자들에 의하여 돈점설頓漸說이 주장









           3)  『고승전』 제7권, 竺道生, “又六卷泥洹先至京都…以宋元嘉十一年冬十一月庚子 於廬山精舍昇

             于法座” (T50-pp366c~367a)
           4)  『고승전』에는 돈오성불을 주장하였다고 할 뿐, 더 이상의 자세한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는  矢吹慶輝, 「頓悟義の首唱者, 竺道生とその敎義」, 『佛敎學の諸問題』, 岩波書店 1935 참조.
           5)   胡適, 『神會和尙遺集』, 亞東圖書館, 1930, p.39; 鎌田茂雄, 『中國華嚴思想史の硏究』, 東京大

             學出版會, 1965, p.403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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