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3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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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나서, 거의 1600년이 지나 정말 오랜만에 돈점설이 재연된 것이다.                    6)



              6) 혜관慧觀(5세기 전반)

              ① 혜관은 어린 나이에 출가하여 뒤늦은 중장년에 여산의 혜원을 따르
            다가, 다시 구머라집을 찾아가 사사하였다. 구마라집이 『묘법연화경』을

            역출하자, 『법화종요서法華宗要序』를 지어 바쳐 칭찬을 들으며, 마땅히 남
            쪽으로 돌아가 법을 전하라는 분부를 받았다. 구마라집 입몰후 문종文宗

            재위시에 건강建康의 도량사道場寺에 거주하였다. 『변종론辨宗論』  『논돈오
            점오의論頓悟漸悟義』  『승만경서勝鬘經序』 등을 지었다.

              ② 도생이 돈오설을 주장하자, 이에 대항하여 『점오론漸悟論』을 저술하
            여 점오설을 주장하였다.

              ③ 오시교판五時敎判 주장. 그는 중국불교에 사실상 처음으로 불교의
            경론을 설한 시기와 내용을 기준으로 구별하는 교판설을 제시하였다. 혜

            관의 오시교판설은 『고승전』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길장이 저술한 『삼
            론현의』에 기술되어 있어, 그 내용을 알아볼 수 있다.

              먼저 불교 전체를 크게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로 구분하였다. 돈교는 오
            직 대승 보살들을 위해 완전한 교설을 설한 『화엄경』 부류이고, 점교는 부

            처님이 녹야원에서 처음 설법한 초전법륜부터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하
            실 때까지, 중생을 교화시키기 위하여 순차적으로 설한 일대一代의 가르







            6)  필자는 그 무렵 한 편의 논문에서 돈점설의 유래를 찾아보며, 돈오돈수 뿐만 아니라 돈오점수도 멀리
             당나라의 화엄종 징관澄觀 (738~839)의 저술에 모두 기술되어 있었음을 지적하였다.(박상수, 「돈오돈수의 기
             원과 주장자 및 불교역사상의 평가」, 『백련불교논집』 4, 장경각 1994, pp.167~204) 지금 삼론학파의 학자들의 생애를 정
             리하며 살펴보니, 돈점설의 최초의 근원은 화엄종의 징관을 지나 선종을 너머, 초기 삼론학자이자 열
             반학자인 도생과 혜관 등에게 있다는 사실을 다시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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