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P. 132
79)
知無見, 無作無緣.” 斯則知自無知矣, 豈待返照然後無知哉? ③ 若有知 80)
81)
性空而稱淨者, 則不辨於惑智. 三毒四倒 亦皆清淨, 有何獨尊於般若? 若
82)
以所知 美般若, 所知非般若. 所知自常淨, 故般若未嘗淨, 亦無緣致淨歎
83)
於般若. 然經云“般若清淨”者, 將無 以般若體性真淨, 本無惑取之知. 本
84)
無惑取之知, 不可以知名哉 . 豈唯無知名無知, 知自無知矣. ④ 是以聖人
85)
以無知之般若, 照彼無相之真諦. 真諦無兔馬之遺 , 般若無不窮之鑒. 所
87)
86)
88)
以會而不差, 當而無是 , 寂怕 無知 , 而無不知者矣.
[11] ① 대답 한다: 대저 중생을 구제하는 성인의 업적은 하늘과 땅만
큼 높고 넓지만 그러나 (공적에) 머무르며 자랑하지 않는다. (성인의) 지혜
는 해와 달보다 밝지만 미혹되게 작용하는 지혜는 없다. 어찌 목석처럼
마음에 분별력이 없어야만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는 상태’이겠는가? 진
79) 『마하반야바리밀경』 권제6(T8-p262c)·권제20(T8-p363c) 등에 내용이 비슷한 구절이 보인다. 그러나
글자가 똑같은 구절이 없는 것으로 보아 승조는 경전의 ‘의미를 인용[의인義引]’한 것 같다.
80) 지知는 반야를 가리킨다.
81) 사전도四顚倒는 중생들이 존재의 실상을 모르고 무상無常한 것을 상常으로,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무
아無我를 아我로, 깨끗지 않은 것을 깨끗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을 말한다. 네 가지 도리에 어긋난 견
해를 가리킨다.
82) 소지所知는 반야의 인식 대상 즉 진제를 말한다.
83) 장무將無는 ‘… 이 아니겠는가?’라는 뜻이다. 장무將無는 막비莫非와 같은 의미다.
84) 여기서 재哉는 ‘의문사’라기보다는 ‘감탄의 어기’를 나타낸다.
85) ‘토마지유兎馬之遺’는 『우바새계경』 권제1에 나오는 비유와 관련이 있다. 토끼·말·코끼리가 강을 건
널 때 토끼는 물에 떠서 강을 건너고, 말은 발을 강바닥에 닿으나 철저하지 못하고, 코끼리는 철저
하게 강바닥에 발을 닿으면서 강을 건넌다는 고사가 그것이다. 강은 십이인연을 말하며, 토끼는 성
문, 말은 연각, 코끼리는 불·보살을 상징한다. T24-p1038b. 여기서는 ①진제는 모든 진리를 남김
없이 포괄한다, ②진제에는 본래 토끼나 말의 얕고 깊은 흔적이 없다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86) ‘시是’는 옳고 그름이라는 편견과 집착을 가리킨다.
87) 파怕는 박泊과 같은 뜻이다. 박泊은 형용사로 조용하다, 담담하다는 의미다. 적파寂怕는 고요하고 담
담하다, 즉 없다는 뜻이다.
88) 전후 문맥상, 여기서 ‘무지無知’의 知는 범부의 지혜를 ‘무부지無不知’는 성인의 지혜를 각각 가리킨다.
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