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3 - 고경 - 2019년 4월호 Vol. 72
P. 133

실로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이 (성인의) 반야지혜의 인식 능력이기에 보통 사

            람의 견해로 그것[인식능력]을 이해해서는[찾아서는] 안 된다. ② 그대는 성
            인은 스스로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여기게 할지언정 지혜를 가지

            지 않은 적이 결코 없었다고 말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반야의 본래 의미
            에 어긋나고 경전의 가르침을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 왜 그런가? 경전

            은 “반야는 허공처럼 청정하고[세속의 지혜처럼 미혹되게 작용하는 지혜(혹지惑
            知)가 없다], 반야에는 중생의 지혜나 견해 그리고 조작이 없고, 반야는 인

            연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마하반야바라
            밀경』의 이 구절에 따르면 반야지혜에는 ‘미혹되게 작용하는 지혜’가 본

            래 없다. 어찌 (반야지혜의) 인식을 되돌려 살펴보기를 기다린 다음에[미혹
            한 지혜를 닫고 ‘거짓 총명[분별심]’을 막은 다음에] ‘미혹되게 작용하는 지혜’가

            없겠는가? ③ 만약 어떤 사람이 반야지혜가 본성상 공하기에 그것을 청
            정하다[미혹되게 작용하는 지혜(혹지惑知)가 없다]고 찬양한다면, 이는 ‘반야’와

            ‘미혹되게 작용하는 지혜[세속의 지혜]’를 혼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탐·
            진·치 삼독三毒과 상·락·아·정 사전도四顚倒 역시 (본질상 공空해) 청정

            한 것이 되는데, 무엇 때문에 반야만 홀로 존귀하겠는가? 만약 반야의 인
            식대상인 진제眞諦가 청정하다고 인식주체인 반야를 찬미한다면 진제는

            반야가 아니다[찬미할 이유가 없다]. 인식대상인 진제가 스스로 항상 청정하
            다고 인식주체인 반야가 청정하게 되는 것도 아니며[반야가 진제를 인식하므

            로 인식대상이 있는 것은 청정(공空)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반야 역시 청정하
            다고 찬탄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경전이 “반야에는 (혹지惑知가 없어) 청정

            하다”고 말한 것은 반야의 근본 본성이 참으로 깨끗해서 그런 것 아니겠
            는가! (다시 말해) 본래 ‘미혹되게 작용하는 지혜[망지妄知. 세속의 지혜]’가 없

            다는 것이다. 본래 ‘미혹되게 작용하는 지혜’가 없기에 ‘지知’라는 이름을



                                                                        131
   128   129   130   131   132   133   134   135   136   137   138